"이해찬, 심재철이 거짓자백 해서 고문받았다 했으나,
이해찬은 6월 24일 잡히고, 나는 6월 30일 자수해"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7일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에게 "허위사실 유포행위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즉각적인 수정과 함께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 이날 오후 윤 의원은 1980년대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서 심 의원이 법정에서 한 증언이 운동권 동료 유죄 판결의 핵심 증언으로 사용됐다고 주장하며 "진실된 자세로 용서를 구하라"고 했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오른쪽 두번째)이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에게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윤 의원은 1980년대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서 심 의원의 법적 증언이 민주화 운동권 동료 유죄의 핵심 증언으로 쓰였다고 주장했다./연합뉴스
심 의원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행적을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심 의원과 유 이사장이 서로 상대가 작성한 당시 합수부 진술서가 일부 정치인과 운동권 동료들의 유죄 증거로 쓰였다며 주장했다.
심 의원은 이날 윤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지 5시간 만에 입장문을 냈다. 심 의원은 입장문에서 "본 의원이 체포되기 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다른 모든 피고인의 자백으로 완성되어 있었다"며 "이해찬은 심재철이 먼저 잡혀 거짓자백을 해서 자신이 고문받았다고 했으나, 이해찬은 6월 24일에 잡혔고 나는 6월 30일에 자수했다"고 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자기 진술 때문에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고문을 받았다는 것은 시간순서상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 의원은 이어 "본 의원은 지금껏 침묵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과거 민주화 경력이 자신들의 것인양 판결문에 판시된 내용도 은폐하며, 상대 진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허위사실을 들어 공격하는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국민께 진실을 고한다"며 "내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핵심 증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넘친다"고 했다.
심 의원은 "법정기록 전체를 통털어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진실은 김대중씨 모든 목록의 참고인 및 증인란에 본 의원의 이름이 없고, 판결문에 증거의 요지로 언급되지 않았으며, 공소장에도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또 "검찰이 공소유지를 위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목록에서도 김대중씨를 비롯한 타 피고인의 증거나 공소입증 증인으로 본 의원의 이름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서 유일하게 안면이 있던 이해찬씨 증거목록에도 본 의원이 나오지 않는다"며 "103쪽 (분량의) 증거목록에도 나오지 않는 본 의원이 김대중씨 사형선고나, 다른 피고인들의 중형 선고에 영향을 줬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했다. 심 의원 진술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민주화인사들이 유죄를 선고받았다는 윤호중 의원 주장은 사실이 아니란 주장이다. 그는 그러면서 "특히 4·19와 같은 폭력시위를 통해 김대중을 옹립하기로 했다는 자백은 이해찬씨의 1차 합수부 진술서에도 나온다"고 했다.
아래는 심 의원의 입장문 전문
김대중 사형선고의 누명을 씌워서야
-사형선고는 한민통 국가보안법 때문-
윤호중 의원의 허위사실 유포행위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즉각적인 수정과 함께 사과를 요구합니다.
본 의원이 체포되기 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은 다른 모든 피고인의 자백으로 완성되어 있었습니다.(103쪽짜리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공소사실 입증 증거목록) 김대중 씨는 반국가단체 한민통 수괴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는 판결문에도 판시되었습니다.(1심 판결문 법령의 적용(1심 판결문 000159쪽) :"동법 제38조 제1항 제1호에 의하여 형이 가장 중한 판시 국가보안법 위반제에 정한 형으로 피고인 김대중을 사형에 처하고") 김대중씨 본인도 1심 최후 진술에서 한민통을 ‘내 목숨을 앗아간 문제’라고 진술했습니다. 동 피고인중 김상현, 김녹영씨가 한민통의 검찰이 증인청구한 법무사작성의 증인신문조서를 써서 김대중씨 사형의 유죄의 증거가 됩니다. 김대중씨 최측근도 여기에 이름을 올립니다. 공소사실이 100% 유죄가 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에는 증거의 요지로 63명의 이름이 나옵니다.(김대중씨 최측근, 학생운동권 17명 포함) 여기에도 본 의원이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1심 19차 최후진술, 000337쪽).
본 의원은 김대중씨 공소장에 나오지 않으며 전 피고인 증거목록(총 103쪽)에 다른 피고인들의 공소사실 입증 증거, 증인 란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서 유일하게 안면이 있던 이해찬씨 증거목록에도 본 의원이 나오지 않습니다. 103쪽에 증거목록에도 나오지 않는 본 의원이 김대중씨 사형선고나, 다른 피고인들의 중형 선고에 영향을 줬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사실입니다.
본 의원과 문익환, 조성우, 이해찬, 이신범 등 학원 시위와 관련된 내란음모혐의는 본 의원이 체포되기 전 다른 피고인들의 자백으로 이미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4.19와 같은 폭력시위를 통해 김대중을 옹립하기로 했다는 자백은 이해찬씨의 1차 합수부 진술서에도 나옵니다. 이해찬씨는 101명의 민주화인사의 행적을 검찰에 상세히 진술했습니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 24명 피고인중 김대중씨를 비롯한 16명이 검찰에 반성문을 제출합니다. 공판 진술에 관해서 당시 언론은 김대중씨를 비롯한 피고인들이 공소사실을 시인했다는 기사가 85회 보도됩니다. 이해찬씨는 본 의원의 첫 공판 전날 진술(1980.8.22.)에서 ‘이신범 조성우의 지시로 심재철에게 시위를 사주했다’는 진술을 했고 이는 4개 언론에 보도됩니다.(1980.8.22.) 문익환씨는 민청협이 국민연합의 산하단체임을 시인하였습니다. 김대중씨의 항소이유서, 상고이유서를 보면 자신의 가족이 나서서 한 증언 진술까지 부동의한다고 했습니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중 김대중씨나 동 피고인으로부터 금품을 제공받지 않은 사람은 본 의원이 유일합니다. 다른 피고인들은 모두들 공판에서 이 같은 금품 수수와 교부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본 의원이 보수정당에 입문한 후 이해찬씨는 본 의원이 먼저 잡혀 거짓자백을 해서 자신이 고문받았다고 허위사실을 언론에 인터뷰합니다.(1998.6. 신동아) 그러나 이해찬씨는 6.24. 잡혔고 심재철은 6.30. 자수합니다. 그 이후에는 측근을 통해 본 의원이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완성시켰다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습니다.
본 의원은 지금껏 침묵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과거 민주화 경력이 자신들의 것인양 판결문에 판시된 내용도 은폐하며, 상대 진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허위사실을 들어 공격하는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국민께 진실을 고합니다.
본 의원이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핵심 증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넘칩니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법정기록 전체 즉, 103쪽에 달하는 증거목록, 기록목록, 김대중씨 참고인 명단인 기록명단, 검찰관 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인 사건기록목록, 법무사 작성의 증인심문조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 항소·상고이유서등 법정기록물 전체를 통털어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진실은 김대중씨 모든 목록의 참고인 및 증인란에 본 의원의 이름이 없고, 판결문에 증거의 요지로 언급되지 않았으며, 김대중 공소장에도 이름이 오르지 않았으며, 검찰이 공소유지를 위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목록에서 김대중씨를 비롯한 타 피고인의 증거나 공소입증 증인으로 본 의원의 이름이 없습니다.
2019. 5. 7.
국회의원 심 재 철
[김명지 기자 maeng@chosunbiz.com] [김민우 기자 minsicht@chosunbiz.com]
이해찬은 6월 24일 잡히고, 나는 6월 30일 자수해"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7일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에게 "허위사실 유포행위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즉각적인 수정과 함께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 이날 오후 윤 의원은 1980년대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서 심 의원이 법정에서 한 증언이 운동권 동료 유죄 판결의 핵심 증언으로 사용됐다고 주장하며 "진실된 자세로 용서를 구하라"고 했다.

심 의원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행적을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심 의원과 유 이사장이 서로 상대가 작성한 당시 합수부 진술서가 일부 정치인과 운동권 동료들의 유죄 증거로 쓰였다며 주장했다.
심 의원은 이날 윤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지 5시간 만에 입장문을 냈다. 심 의원은 입장문에서 "본 의원이 체포되기 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다른 모든 피고인의 자백으로 완성되어 있었다"며 "이해찬은 심재철이 먼저 잡혀 거짓자백을 해서 자신이 고문받았다고 했으나, 이해찬은 6월 24일에 잡혔고 나는 6월 30일에 자수했다"고 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자기 진술 때문에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고문을 받았다는 것은 시간순서상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 의원은 이어 "본 의원은 지금껏 침묵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과거 민주화 경력이 자신들의 것인양 판결문에 판시된 내용도 은폐하며, 상대 진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허위사실을 들어 공격하는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국민께 진실을 고한다"며 "내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핵심 증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넘친다"고 했다.
심 의원은 "법정기록 전체를 통털어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진실은 김대중씨 모든 목록의 참고인 및 증인란에 본 의원의 이름이 없고, 판결문에 증거의 요지로 언급되지 않았으며, 공소장에도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또 "검찰이 공소유지를 위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목록에서도 김대중씨를 비롯한 타 피고인의 증거나 공소입증 증인으로 본 의원의 이름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서 유일하게 안면이 있던 이해찬씨 증거목록에도 본 의원이 나오지 않는다"며 "103쪽 (분량의) 증거목록에도 나오지 않는 본 의원이 김대중씨 사형선고나, 다른 피고인들의 중형 선고에 영향을 줬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했다. 심 의원 진술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민주화인사들이 유죄를 선고받았다는 윤호중 의원 주장은 사실이 아니란 주장이다. 그는 그러면서 "특히 4·19와 같은 폭력시위를 통해 김대중을 옹립하기로 했다는 자백은 이해찬씨의 1차 합수부 진술서에도 나온다"고 했다.
아래는 심 의원의 입장문 전문
김대중 사형선고의 누명을 씌워서야
-사형선고는 한민통 국가보안법 때문-
윤호중 의원의 허위사실 유포행위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즉각적인 수정과 함께 사과를 요구합니다.
본 의원이 체포되기 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은 다른 모든 피고인의 자백으로 완성되어 있었습니다.(103쪽짜리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공소사실 입증 증거목록) 김대중 씨는 반국가단체 한민통 수괴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는 판결문에도 판시되었습니다.(1심 판결문 법령의 적용(1심 판결문 000159쪽) :"동법 제38조 제1항 제1호에 의하여 형이 가장 중한 판시 국가보안법 위반제에 정한 형으로 피고인 김대중을 사형에 처하고") 김대중씨 본인도 1심 최후 진술에서 한민통을 ‘내 목숨을 앗아간 문제’라고 진술했습니다. 동 피고인중 김상현, 김녹영씨가 한민통의 검찰이 증인청구한 법무사작성의 증인신문조서를 써서 김대중씨 사형의 유죄의 증거가 됩니다. 김대중씨 최측근도 여기에 이름을 올립니다. 공소사실이 100% 유죄가 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에는 증거의 요지로 63명의 이름이 나옵니다.(김대중씨 최측근, 학생운동권 17명 포함) 여기에도 본 의원이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1심 19차 최후진술, 000337쪽).
본 의원은 김대중씨 공소장에 나오지 않으며 전 피고인 증거목록(총 103쪽)에 다른 피고인들의 공소사실 입증 증거, 증인 란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서 유일하게 안면이 있던 이해찬씨 증거목록에도 본 의원이 나오지 않습니다. 103쪽에 증거목록에도 나오지 않는 본 의원이 김대중씨 사형선고나, 다른 피고인들의 중형 선고에 영향을 줬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사실입니다.
본 의원과 문익환, 조성우, 이해찬, 이신범 등 학원 시위와 관련된 내란음모혐의는 본 의원이 체포되기 전 다른 피고인들의 자백으로 이미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4.19와 같은 폭력시위를 통해 김대중을 옹립하기로 했다는 자백은 이해찬씨의 1차 합수부 진술서에도 나옵니다. 이해찬씨는 101명의 민주화인사의 행적을 검찰에 상세히 진술했습니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 24명 피고인중 김대중씨를 비롯한 16명이 검찰에 반성문을 제출합니다. 공판 진술에 관해서 당시 언론은 김대중씨를 비롯한 피고인들이 공소사실을 시인했다는 기사가 85회 보도됩니다. 이해찬씨는 본 의원의 첫 공판 전날 진술(1980.8.22.)에서 ‘이신범 조성우의 지시로 심재철에게 시위를 사주했다’는 진술을 했고 이는 4개 언론에 보도됩니다.(1980.8.22.) 문익환씨는 민청협이 국민연합의 산하단체임을 시인하였습니다. 김대중씨의 항소이유서, 상고이유서를 보면 자신의 가족이 나서서 한 증언 진술까지 부동의한다고 했습니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중 김대중씨나 동 피고인으로부터 금품을 제공받지 않은 사람은 본 의원이 유일합니다. 다른 피고인들은 모두들 공판에서 이 같은 금품 수수와 교부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본 의원이 보수정당에 입문한 후 이해찬씨는 본 의원이 먼저 잡혀 거짓자백을 해서 자신이 고문받았다고 허위사실을 언론에 인터뷰합니다.(1998.6. 신동아) 그러나 이해찬씨는 6.24. 잡혔고 심재철은 6.30. 자수합니다. 그 이후에는 측근을 통해 본 의원이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완성시켰다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습니다.
본 의원은 지금껏 침묵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과거 민주화 경력이 자신들의 것인양 판결문에 판시된 내용도 은폐하며, 상대 진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허위사실을 들어 공격하는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국민께 진실을 고합니다.
본 의원이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핵심 증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넘칩니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법정기록 전체 즉, 103쪽에 달하는 증거목록, 기록목록, 김대중씨 참고인 명단인 기록명단, 검찰관 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인 사건기록목록, 법무사 작성의 증인심문조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 항소·상고이유서등 법정기록물 전체를 통털어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진실은 김대중씨 모든 목록의 참고인 및 증인란에 본 의원의 이름이 없고, 판결문에 증거의 요지로 언급되지 않았으며, 김대중 공소장에도 이름이 오르지 않았으며, 검찰이 공소유지를 위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목록에서 김대중씨를 비롯한 타 피고인의 증거나 공소입증 증인으로 본 의원의 이름이 없습니다.
2019. 5. 7.
국회의원 심 재 철
[김명지 기자 maeng@chosunbiz.com] [김민우 기자 minsich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