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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철생각

오뚝이 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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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서울의 봄’을 착용한 영화 ‘서울의 겨울’
2023.12.12
의원실 | 조회 255

현대사에는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라는 군내 일부 집단이 1979. 10. 26. 대통령 박정희 시해사건 이후 혼란한 시국상황에 편승해 정치권력을 장악해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중요한 세 가지 사건이 있다.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무력진압’이 그것이다.

1. ‘12.12. 군사반란’을 시기가 다른 ‘서울의 봄’으로 착용





영화 ‘서울의 봄’은 그 중 ‘12.12 군사반란’, 즉 1979년 12월 12일 저녁 정승화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의 연행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경 최규하 대통령의 사후 재가까지 신군부의 쿠데타 과정을 그렸다. 영화는 ‘그 해 겨울 철저히 감춰졌던 이야기다’라고 시작한다. 이는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부 젊은 세대로 하여금 실존 인물들의 모티브에 창작을 가미한 영화의 허구를 역사적 사실로 믿게 할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이 ‘서울의 봄’이라고 했는데 실제 내용은 12. 12. 군사반란이다. 1980.5․17 내란의 배경으로 악용된 학생들의 민주화운동 투쟁사인 ‘서울의 봄’이라는 명칭을 차용한 것은 잘못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서울의 봄’이라는 이름이 쓰이는 시기는 보통 1980년 2월 대학가 개강 직전 때부터 5월 17일까지의 짧았던 민주화 과정 시기를 이른다. 1980년 1월 초에도 개헌을 요구하던 서울대생들이 구속되던 ‘겨울’이었다. 그러다 1980.1.21. 김대중 前대통령 후보의 자택 연금이 해제되고 2.29. 윤보선 前대통령, 김대중 前대통령 후보, 지학순 주교를 포함한 긴급조치위반자 등 687명에 대한 사면, 복권이 단행되었다.

3월 28일에는 서울대 총학생회(총학생회장 심재철)가 대학 중 맨 먼저 출범했고, 전국의 대학에서는 해직 교수와 제적생들이 복직․복교되어 학교로 돌아오면서 총학생회가 부활되는 동시에 각 대학별로 학원자유화 내지 학원민주화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이것이 진짜 ‘서울의 봄’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1979년 12월 12일 당시 세상은 아직 민주화가 도래하지 않은 ‘서울의 겨울’이었다. 1979년 12월은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뒤 신군부가 권력을 탐한다는 국민들의 우려 속에 동면의 시간이 흐르던 여전한 ‘겨울’이었다. 그러다 3월 대학이 개강하면서 학원가에 민주화의 열망이 터져나와 ‘서울의 봄’이 열렸던 것이다. 곧, 영화 제목을 史實대로 표현하자면 ‘서울의 봄’이라기 보다는 ‘서울의 겨울’ 내지는 ‘서울의 봄 前夜’라고 해야 적확할 것이다.

1980년 서울의 봄 때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학생 민주화운동을 했던 당사자로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12.12 성공 후 12월 13일 보안사령부에서 찍은 신군부 단체 사진의 오마쥬와 함께 ‘찬란했던 서울의 봄은 그렇게 끝났다’는 자막을 보며 잘못은 짚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12로 서울의 봄이 끝났다고?’ 자막을 ‘이후 찬란했던 서울의 봄은 끝났다’라고 붙였으면 어땠을까. 물론 흥행과 국민의 인식을 고려해 그렇게 이름붙였겠지만 픽션 영화인만큼 史實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2. 김영삼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으로 역사에 기록




기무사에서 편찬한 제5공화국 前史 3편 맨 앞쪽에는 당시 합수본부장 겸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이 사진이 있으며, 그 밑으로 12월 13일 보안사령부에서 찍은, 영화 마지막에 쓰인 바로 그 단체 사진이 있다. 사진 캡션은 ‘12․12 난국 극복의 참여자들(1979.12.13.)’이라고 되어 있다.

1993. 2. 김영삼은 대통령 취임 직후 이 사진에 나온 김진영 육군참모총장 등 하나회 구성원들을 군내에서 대거 숙정했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전까지는 12.12 ‘사건’, ‘사태’로 명명되었으나 1995년부터 ‘12.12. 군사반란’으로 현대사에 기록되었다. 애초 검찰은 1994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궤변으로 공소권 없음을 결정했으나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이 특별법을 만들어 재수사를 지시하자 검찰이 자세를 전환했다. 1995년 12. 21. 전두환․노태우 前대통령을 포함해 특전사령관 정호용 등 신군부 핵심 인사 18명이 ‘군사반란 및 내란죄’로 구속되었고 1996년 1월 23일 전원 기소되었다.

이것이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이다. ‘전두환 노태우를 구속하면 김영삼 대통령의 당에 입당하겠다’고 약속한 80년 서울의 봄 학생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도 전두환이 구속된지 4일 만에 국민의힘의 전신인 민자당에 입당했다.

검찰과 법원은 ‘12․12’, ‘5․17’, ‘5․18’을 군사반란 및 내란 행위로 판단했고, 1996. 12. 16. 서울고등법원에서 내려진 판결 「선고 96노1892」(1996. 12. 16.)에서 다음과 같이 실행이 선고됐다.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 황영시·허화평·이학봉 징역 8년, 이희성·주영복·정호용 징역 7년, 유학성·허삼수 징역 6년, 최세창 징역 5년, 차규헌·장세동·박종규·신윤희 징역 3년 6월.


3. 역사의 진실공개는 시대의 사명




영화는 허구로 개인을 미화한데 그치지 않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까지 왜곡했다. 최규하 대통령이 정승화 사무총장의 연행을 사후 재가하면서 결재서류에 ‘5:10 사후재가’로 기입한 것으로 사실과 다르게 묘사한 것이다. 기무사 자료에 의하면 최규하 前대통령은 실제 5시경 서명하면서 시간을 명시하지 않았다.

기무사 자료 중에는 당시 대통령 최규하의 서명이 들어간 정승화 체포 동의서가 있다. 이 문서에는 정승화 계엄사령관뿐만 아니라 이건영 3군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도 함께 연행자 명단에 들어있다. 이 문서에 서명된 날짜는 12. 12.이었다. 그러나, 정승화에 대한 체포 동의서에 최규하 대통령이 서명한 것은 12. 13. 05:00경이었다. 최규하 대통령은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체포에 동의해달라는 전두환 합수본부장의 요청을 노재현 국방부장관과 상의한 뒤 재가하겠다며 수차례 거부했다. 노재현 국방부장관이 청와대로 들어간 시각은 04:30 이후였다.(기무사 자료 中)

최 前대통령은 1995.12.12. 군사반란을 수사하던 중앙지검의 수 차례의 방문조사 요청에도 불구하고 ‘전직 대통령의 재임 중 국정행위가 조사를 받는 것은 헌정사에 바람직하지 못한 선례를 남기게 되고 이러한 과거사는 역사의 평가에 맡기는 것이 보다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로 끝내 거부했다. 당시의 행적이나 시대를 증언할 회고록조차 남기지 않은 최규하 前대통령에 대해서는 큰 유감이다.


4. ‘80년 서울의 봄 때 신군부와 맞섰던 당시 대학생인 우리 세대의 시대적 책무는 진실 공개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


* 별첨: 12. 12. 군사반란때 상황일지(감청 기록)

[12. 12. 군사반란 때 상황일지]

다음의 보안사에서 작성한 「12․12 상황일지」는 1979. 12. 12.부터 12. 13.까지 보안사에서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의 전화 등을 감청하여 시간대별로 송수화자의 통화내용을 기록한 자료이다. 또한 이 자료에는 ‘12․12’ 당시 정승화 참모총장의 연행 이후 벌어졌던 주요 지휘관들의 대응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1. 반란은 1979. 11.초부터 시작되었다

노 장군(故노태우 前대통령)에 의하면 … 정 총장을 수사해야겠다는 합수본부장 전 장군의 결심이 이미 11월 초에 확고히 섰으며 … 12월 12일은 부총리였던 신현확씨가 국무총리에 내정되어 다음 날 13일에 국무회의가 열려 새로운 내각의 구성을 논의하게끔 되어 있었다. 따라서 전두환 장군은 개각 전날 정 총장을 연행․수사하고, 그 결과가 국무회의에 연결, 군의 인사에 반영된다면 10․26사건 수사는 수사대로 완결되고 육군참모총장의 자연스런 교체가 가능하여 군의 신뢰와 단결을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2. “니들 내가 탱크몰고 갈테니까 꼼짝 말고 있어”(장태완 이태신분)은 허구

신군부측은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회유했다. 12. 12. 21:06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중장은 수경사령관과의 전화통화에서 경복궁 내의 수경사 30경비단 단장실로 올 것을 권유했고 뒤이어 1군단장 황영시 중장과 수도군단장 차규헌 중장도 차례로 설득했으나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나는 죽기로 결심한 놈이야, 쓸데없는 소리 마라”며 단호하게 거부했다.(보안사, 「12.12 상황일지(전화통화 내용)」)

유학성 : 나야. 그런데 오늘 일은 정 총장이 각하시해 사건과의 관련 문제로 합수본부에서 합법적으로 조사하려다 일어난 것이니 그리 알아. 그러니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이리로 와.

장태완 : 왜 남의 부대에 와서 이러느냐.

유학성 : 장 장군 그거 다 알면서 왜 그래, 그러지 말고 이리로 와.

장태완 : 왜 이 지랄이야, 쏴 죽인다.

황영시 : 장 장군! 나 1군단장 황영시야.

장태완 : 군단장님 왜 그러십니까? 그 점잖은 어른을 어떻게 할 작정이야요?

황영시: 그거 통할 수 있는 처지인데 너 왜 그래, 이리 와.

장태완 : 총장을 어쩌자고 납치하는 거요. 정말 그러면 죽어!

황영시 : 여기 차규헌이 와 있는데 너 이리 와.

장태완 : 나는 죽기로 결심한 놈입니다. 쓸데없는 소리 마. 당신네들 그럴 수가 있어. 좋지 않아. 그러면 안 돼!

3. 장태완은 부하의 거짓 보고 ‘3공수단이 이미 천호대교를 넘었다’에 진압의지를 상실했고 직속 부하에 의해 수경사령관 접견실에 납치 연행됨

12. 13. 00:17 최세창 3공수여단장의 지시로 3공수여단 병력(39/186)이 출동했다. 00:40 1공수여단 병력은 행주대교를 통과했다. 「12. 12. 상황일지(전화통화내용)」에 따르면, 01:25에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부상당한 채 무장해제됐고 이 과정에서 사상자(김오랑 중령)가 발생했다.

23:45. 수경사 소속 전차 3중대가 수경사령부에 도착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부단장이 33단을 지휘하고 헌병단은 작전과장이 지휘하라고 명령하는 한편, 33단장 김진영 대령과 헌병단장 조홍 대령을 발견하는 즉시 사살하라고 지시했다. 수경사령관은 수경사 기밀실에 수경사 소속 전 장교들을 집합시켜 이곳에 없는 장교들은 모두 적이니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자리에 김진선(장태완 수경사령부 작전보좌관)은 참석하지 않은 채 본부근무대 대장과 장태완 사령관 체포를 위해 병력 40명을 준비할 것을 합의했다. 김진선 작전보좌관은 이미 노태우 9사단장과 통화를 하여 상관인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은 바 있다.

김 중령(김진선 수경사령부 작전보좌관)은 … 30단(경복궁 안 신군부의 본부, 수경사 30단장 장세동 대령)으로 전화를 하였다. … “지금 상황이 벌어져 병력이 움직이는데 제1공수를 서울로 투입시켜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하였다. 박희도 장군(1공수여단)은 그러한 질문에 “지금 내가 병력을 투입해도 이상이 없겠는가?” 하고 물었다. 김 중령은 “서울로 들어오는 문제는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니까 투입하십시오” 말했다. … 노태우 장군은 “김진선이지. 마침 찾고 있던 중인데 잘 나왔다.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고 내가 임무를 줄 테니까 하겠나?” 하였다. 김 중령은 그렇게 하겠다 하니 “우선 기회를 보아 수도경비사령관을 납치하여 보안사로 연행해 와. 그리고 어디서든지 유혈시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거기서 방지해 주었으면 좋겠어”라고 하였다. 김 중령은 “그러한 임무를 제가 수행하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서울로 들어온 1공수여단(박희도 준장)은 12.13. 01:52경에 국방부를, 이어 02:15경에 육군본부를 점령했다. 02:14경 김진선 수경사 작전보좌관은 전 검문소에 일체 사격을 금지시겼으며, 장갑차 10대, 2.5톤 26대 천호대교 접근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뒤 천호대교 검문소 병사에게 사령부 지시라며 사격하지 말고 내무반으로 철수하라고 지시를 하였다. 이어 02:15. 장태완 수경사령관실로 가서 “3공수여단이 천호대교를 건넜고 그 뒤에 20사단 병력이 통과중입니다”고 허위 보고했다.(실제 3공수여단이 천호대교를 통과한 시각은 02:35~02:37) 이를 계기로(허위보고)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진압의지를 상실했다.

이에 대해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을 보며 "이제 수경사는 능력 부족입니다"라고 말했으며 다른 장군도 "유혈은 막아야지요"라고 말했다. 03:03에는 9사단과 제2기갑여단이 구파발 검문소를 통과하였고, 이어 03:25에는 제5공수여단의 3개대대 병력과 APC가 광진쪽에서 제2한강교로 접근중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03:10경 윤성민 참모차장은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유학성 장군에게 전화를 하여 수경사 쪽의 전투행위를 중지시킨 것을 알렸다. 그리고 한강교상의 차량 바리케이드도 04:00 통금해제와 더불어 풀었다. 04:17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수경사 헌병들에 의해 수경사 헌병단으로 연행됐다.

4. 장태완은 직속 부하에게 자신의 사무실에서 납치 연행됨

김진선 수경사 중령은 노태우 장군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한 기회를 꾸준히 엿보고 있었다. … 납치(장태완 수경사령관)를 위한 병력을 어디서 차출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오랜 생각 끝에 본부근무대장으로 있는 편○○ 소령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편 소령은 그의 후배인 데다가 병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질문하지 말고 내 말대로 해” 하고 나서 체격좋고 용감한 병사들을 한 20여명 선발 준비해 두라고 하였다. … 한시간이 흘렀다. 김 진선 중령은 편 소령에게 가서 준비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편 소령은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하였다. “어느 정도냐” 하니 편 소령은 “다들 충성을 맹세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임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김진선 수경사 중령은 “사실 너의 임무는 장태완 수경사 사령관을 납치하는 것이다. … 사령관을 납치하는 것이 사령관한테도 도움이 되고 국가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니 어떻게 모시고 있던 사령관을 납치하느냐 하는 콤플렉스를 가지지 말고 프라이드를 가지고 임무를 수행하라. 그 분을 안전하게 모시고 간다 하는 것으로 생각하라”고 구체적인 임무를 부여하였다. 편 소령은 놀라는 듯하였으나 곧 “제가 하겠습니다”고 임수수행을 약속하였다. … 이때 인사참모 이진백 대령이 와서 … “사령관을 납치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상황실장(김진선 중령)도 그런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였다. … 이진백 대령은 그 나름대로 밤 10시경 전두환 보안사령관으로부터 김진선 중령과 같은 임무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실은 같은 임무가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 중령에게 같은 무렵에 주어졌었다. 보안사령관은 신 중령에게 김진선 중령과 협의해서 장태완 사령관을 납치하라고 지시하였던 것이다. …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 중령 예하에 헌병단에서 …40명을 차출하여 사령관 납치작전계획을 수립하였다. … 행동개시 시간이 03:30이었다. 편 소령이 앞에 서고 신 중령과 … 헌병단 57중대 병력 20여명을 사령관실 복도 요소요소에 배치하면서 사령관실로 갔다. 그들은 먼저 한○○ 대위를 선두로 부속실로 진입하였다. 거기에는 비서실장과 전속부관을 비롯하여 20여명의 무장병력이 있었다. 그들은 M16을 들이대면서 무장해제를 한 후 “나가시오” 해서 경호원을 밖으로 내쫒고, 다시 사령관실로 “손들어!” 하면서 들어갔다. 이때 육본 작전참모부장 하소곤 소장이 권총을 뽑으면서 다른 방으로 피하려다 진입 헌병이 발사한 총에 왼쪽 가슴을 맞고 쓰러졌다. 그때 5, 6명의 일부 장성들도 권총에 손을 대려 하였으나 그들은 하 장군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손을 들었다. 신윤희 헌병단 중령은 “상부의 명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장군들을 무장해제하고 감시케 한 후 장태완 장군이 있는 접견실로 들어갔다. 10여명의 헌병이 총을 들이대면서 들이닥치자 장태완 장군은 “사격하지 말라. 내 총을 가져가라. 왜 장군을 함부로 쏘느냐?” 하면서 손을 들었다. 헌병들은 장태완 사령관을 무장해제하고 연행했다.

헌병단에서 서빙고로 연행되기 전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김진선 수경사 작전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유혈방지와 수경사의 명예와 전통유지를 당부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 야, 김진선 중령, 수경사에서 네가 오야붕인 모양인데 내가 지금부터 부대 지휘를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 시간부로 수경사를 네가 지휘하라. 내가 부탁할 것이 있는데 너 들어주겠느냐?

김진선 작전보좌관 : 말씀하십시오.

장태완 : 첫째 이 시간 이후에는 피를 흘리지 않도록 네가 단도리를 잘해 달라. 그리고 하소곤 장군 괜찮으냐?

김진선 : 업혀 나갔는데 생명에는 별 지장이 없을 겁니다.

장태완 : 두 번째는 수경사의 명예와 전통이 중요하다. 이것을 너는 꼭 지켜달라.

김진선 :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5. 정승화 총장을 연행할 때 대면한 사람은 허삼수대령이 아니라 우경윤대령

허삼수 대령과 우경윤 대령은 수사관과 지원부대 장교를 집합시켜 정승화 참모총장 연행에 관한 임무를 재확인한 후, 1진에 우 대령, 허 대령 그리고 수사연행조 요원, 2진에 성 대령, 이 중령, 수사수습조 요원, 마지막으로 최 중령이 이끄는 33헌병지원제대의 순으로 18:50 보안사 서빙고 분실을 출발했다. 1진이 한남동 총장공관에 도착한 시각은 18:55경이었다. 공관을 경계중인 해병 헌병대의 검문을 받자 대령 우경윤은 “나는 범수단장 우 대령이고, 보안사 권정달 대령과 함께 총장께 보고 드리러 가는 중이다”고 대답하며 검문소를 통과했다. 이들이 총장공관에 도착했을 때는 19:00였다. 이들은 총장공관으로 들어가서 제지하는 부관 소령 이○○ 및 총장경호 소대장 대위 김○○ 등을 제압하고 정 총장을 연행했다.

우 대령은 “김재규 재판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총장님의 증언 요청이 다시 나왔는데 총장님의 진술을 다시 받아야 하겠습니다”라고 본래의 방문 요건을 말하였다. … “그러면 나한테 왜 전화 없이 너희들이 왔나? 처음엔 보안사에서 무슨 보고를 하러 온다고 하더니 무슨 딴소리냐?” 하면서 정 총장은 소리를 지르고 경호원을 부르면서 야단하였다. 우 대령인 “그러실 필요없이 갑시다. 이렇게 시끄럽게 하시면 아이들한테 좋지 않지 않습니까? 가시지요”라고 재차 권하였다. 정 총장은 “이놈들 가긴 어딜 가느냐? 내가 적어도 육군참모총장이다”라고 호통을 쳤다. 우 대령은 총장의 오른팔을 허 대령이 총장의 왼팔을 끼고 밖으로 끌고 나오려고 하였다. 총장은 더욱 소리를 지르며 헌병을 찾았다. 헌병을 찾기 때문에 우 대령이 “저도 헌병입니다. 헌병을 소리쳐서 불러봐야 번거롭기만 하고 헌병이 지금 제 말을 듣지 총장님의 말 안 들을 겁니다”라고 말하는데, 부속실 쪽에서 공관에 근무하는 경호원 4, 5명이 왁 안으로 들어왔다. 정 총장은 “이놈들 잡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 우 대령은 … 달겨드는 자들을 뿌리치면서 복도 쪽으로 나갔다.

6. 정승화 총장 연행 때 정 총장의 아들이 권총으로 조준

… 우경윤 대령은 복도를 지나 부속실 쪽으로 가 안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어서 현관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탕”하고 부속실 쪽에서 날아오는 총탄에 오른쪽 허리를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 허삼수 대령은 힘을 내어 달려든 공관원을 뿌리치고 총장을 인질로 하여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밖에서 한◯◯ 소령이 뛰어 들어와 다시 함께 총장을 양쪽으로 잡고 있는데, 2층에서 한 청년이 38구경 권총을 가지고 내려오면서 허 대령을 쏘려고 하였다. 정 총장의 아들이었다. 허 대령은 “임마 쏘지마! 네 아버지가 죽는다”고 소리치며 만류하였다. 또한 총장도 아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질책하였다. 그리고 한편 이 때 밖에 나왔던 박◯◯ 상사가 응접실 유리창을 통하여 그것을 보고 총장 아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이것을 본 총장 아들은 다시 2층으로 도망갔다.

7. 최규하 대통령은 이미 육본을 통해서 돌아가는 상황을 인지

전두환 장군이 먼저 “각하,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참모총장, 군사령관 등 고위 지휘관을 연행․조사하는 데는 보안문제도 있고 또 그 자체의 중요성으로 보아 그런 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에게 직접 결재를 맡는 것이 당연합니다…”라고 서두를 꺼냈다. 최 대통령은 “ 잘 알겠소. 그러나 국방장관이 내 참모인데 장관의 이야기도 들어보아야 할 것이 아니오” 하였다. 유학성 장군이 “각하 지금 합수본부장이 조치하고 있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반드시 재가를 해 주셔야 합니다. … 빨리 조치를 안하시면 일대 혼란이 일어나고, 이런 시기에 군이 자칫 잘못하면 혼란이 가중되고 전쟁을 자초하게 됩니다”라고 전 장군을 도와서 말했다. 그에 대해 최 대통령은 “그렇소. 당신네들의 말이 백번 옳아요. 그러나 이런 문제는 계통을 통해서 하겠소” 하였다. 유 장군이 다시 “각하 시간을 지체하면 큰 혼란이 일어납니다. 불상사가 일어나면 큰 일입니다”라고 하니 “그래요? 조용한데 무슨 불상사요. 잠잠하데”라고 대꾸하면서 최 대통령은 그의 입장을 좀처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실상 이때쯤에는 육본 상황실에서의 전화보고로 최 대통령이나 신 국무총리는 정 총장공관에서 총격전이 있었고 육본 벙커에 장성들이 모여들고 있어 군내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영시 장군도 “각하 자유당 당시에 이호 법무장관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어떤 문제를 하명받고 헌법절차가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난색을 표시하자 이 대통령이 헌법도 국가와 국민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 당장 안정이 흔들리고 있는 판에 헌법 절차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한 일이 있는데, 지금 계통을 밟아서 대통령 재가를 얻을 때가 못됩니다”라고 재가를 촉구하였으나 최 대통령은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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